QT나눔방
본문 / 창세기 39:1-6
제목 /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형통을 누린 요셉
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본문은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갔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셉은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이 되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며 채색옷을 입고 집에서 편하게 지냈던 요셉이었는데 하루 아침에 이방 땅의 종의 신분으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본문 2절은 어울리지 않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라고 되어 있습니다. 형통의 사전적인 의미는 모든 일이 뜻대로 잘 되어 간다는 것인데 요셉은 자신이 애굽으로 팔려가기를 누군가의 종이 되기를 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이 요셉에게 모든 일이 뜻대로 잘 되어 가는 중이라고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어떻게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말해주는 것일까요?
성경이 말하는 형통은 세상의 기준과는 다르기 때문임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일이 뜻대로 잘 되어가는 게 세상의 형통이라면 성경이 말하는 형통은 한마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2절 앞부분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풀려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형통한 자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이방 땅에서 종의 신분으로 있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형통한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통함의 기준은 형편의 좋고 나쁨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함께하심의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절을 보면 요셉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친위대장 보디발도 보게 되었다고 알려줍니다. 그래서 요셉은 보디발에게 은혜를 입게 되었고 집 안의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만약 요셉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내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애굽으로 오게 된 것이냐고 내가 어떻게 종이 된 것이냐고 불평 불만만 하고 있었다면 보디발은 요셉을 가정 총무로 결코 삼지 않았을 것입니다. 보디발이 요셉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았다는 것은 분명 그의 얼굴 표정에서 그의 태도에서 뭔가 다른 걸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낯선 이방 땅에서 종으로 있으면서도 어떻게 저렇게 표정이 밝을까? 어쩜 저렇게 일도 잘할까? 그런 여러 가지 것들이 보여줬기 때문에 보디발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게 되었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전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전도는 하나님을 궁금해 하게 만드는 것이고 그 궁금즘에 대해 답해주는 것이 바로 전도인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충분히 불평하고 원망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요셉은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고 그 비결이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임을 보디발로 하여금 알도록 만든 것이죠. 우리에게도 동일한 일이 일어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남들이 볼 때는 지금 고통을 통과하고 있어서 전혀 기뻐하고 감사할 상황이 아니지만 오히려 그런 중에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다면 그 고통이 오히려 전도의 도구가 되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성경은 이런 형통의 이야기로 가득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 당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해 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너희와 같이 가지 않겠다고 하자 모세는 하나님께 매달리면서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가나안 땅은 아무 의미 없다고 기도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께서 함게 하실 것을 허락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죽은 뒤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야 할 막중한 임무를 떠안고 두려워하고 놀라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주신 한 가지 약속은 바로 함께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어떤 여건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여호수아가 담대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죠.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가운데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를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형통은 상황과 형편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을 바로 알게 될 때 우리 삶의 고난도 바르게 해석할 수 있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신다는 것은 모든 고난을 다 면제해 주겠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바로 그곳 애굽에서 종의 자리에서 이후에는 감옥에서 형통케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내 삶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기를 이런 갈등과 고난이 없기를 바라지만 그러나 이런 것들이 아예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구하면서 현재를 견디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서 시선을 한 번도 떼지 않으신 것처럼 우리에게서도 그 시선을 떼지 않으실 것이고 한 번도 요셉을 떠나지 않으신 것처럼 우리와도 영원히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 하루 나를 부르신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함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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