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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무엘하 13:15-22
제목 : 죄의 악순환 고리를 단호히 끊어 내라
16 다말이 그에게 이르되 옳지 아니하다 나를 쫓아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 하되 암논이 그를 듣지 아니하고
17 그가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 내게서 이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 하니
18 암논의 하인이 그를 끌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니라 다말이 채색옷을 입었으니 출가하지 아니한 공주는 이런 옷으로 단장하는 법이라
19 다말이 재를 자기의 머리에 덮어쓰고 그의 채색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가서 크게 울부짖으니라
20 그의 오라버니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되 네 오라버니 암논이 너와 함께 있었느냐 그러나 그는 네 오라버니이니 누이야 지금은 잠잠히 있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라 하니라 이에 다말이 그의 오라버니 압살롬의 집에 있어 처량하게 지내니라
21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
22 압살롬은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그를 미워하여 암논에 대하여 잘잘못을 압살롬이 말하지 아니하니라
사무엘하 13장은 성경에서 가장 어두운 장들 중 하나입니다. 다윗의 아들 암논이 이복 누이 다말을 범하는 사건(1–14절)은 이미 우리를 충격에 빠뜨립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볼 말씀 15–22절은 그 이후의 이야기, 죄가 저질러진 다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보여줍니다.
욕망이 채워진 이후 찾아온 것은 사랑이 아니라 증오였고, 피해자 다말에게 돌아온 것은 위로가 아니라 침묵과 외면이었습니다.
사무엘하 13장의 이 비극은 우리에게 매우 무겁고 불편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숨겨진 상처, 묻어 둔 분노, 방관의 죄를 드러내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정직하게 서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시작을 주십니다.
15절에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이것이 욕망의 본질입니다. 욕망은 상대를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상대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사랑이었지만, 그는 다말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사랑이 아니었기에, 욕망이 채워지고 나자 그 자리에 더 큰 미움이 자리를 잡습니다.
이 말씀은 단지 옛날 이스라엘 왕가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가정과 관계,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의 축소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봅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과, 인간이 자기 욕망을 포장하기 위해 사용하는 사랑이라는 표현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짜 사랑은 상대를 존중하고, 지켜 주고, 책임을 지려는 마음입니다. 반대로 정욕은 상대를 소유하고, 사용하고, 자기 만족을 위해 이용하려는 마음입니다.
정욕은 내가 원하는 것이 채워지는 순간, 상대가 불편한 존재, 죄의 흔적을 상기시키는 거울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갑자기 미움으로 바뀝니다.
16절에서 다말은 울부짖으며 암논에게 말했습니다. “안 됩니다! 저를 보내는 것은 더욱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라버니가 지금 하신 일보다 더 큰 죄입니다.” 그러나 암논은 다말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큰 악을 행했지만, 지금 하는 이 버려 버리는 행위가 더 큰 악이라고 말합니다. 죄를 짓는 것도 죄이지만, 죄를 짓고 난 후에 책임지지 않고, 상대를 밀어내고,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도망가는 태도는 더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우리가 관계에서 실수하고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 입니다. 내가 상처를 준 사람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그냥 잊어버려~다 지난 일이야~ 하면서 상대의 눈물을 외면하고, 책임지지 않고, 기억에서 지워 버리려 할 때, 그 사람의 상처는 더 깊어집니다. 암논은 다말을 불러들일 때는 엄청나게 필요로 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것처럼 굴었지만, 실제로는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생각했을 뿐입니다.
상처를 입은 후 또다시 공동체에서 외면당하는 이들에게 우리 교회가 진정한 피난처가 되고 있는지 돌아보고 로마서 12장 15절 말씀처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신암의 공동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죄의 피해자가 겪는 깊은 고통과 수치를 보여줍니다. 다말은 원래 채색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왕의 딸들이 입는 옷, 즉 존귀함과 순결, 보호받는 신분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말은 옷을 찢고, 재를 머리에 뒤집어쓰며, 손을 머리에 얹고, 울부짖으며 나갑니다. 옷을 찢는 행위는 구약에서 극심한 슬픔, 절망, 회개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다말의 존귀함이 짓밟혔고, 그녀의 인생이 한순간에 갈기갈기 찢겨 나간 것입니다.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피해자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엿보게 됩니다.
그녀는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를 당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수치와 부끄러움, 자책과 절망이 온 몸에 덮입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에도 다말과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예배에 앉아 있고, 직장에 나가고, 교제를 나누지만, 마음 속에는 찢긴 옷을 입고 울부짖는 상처가 있습니다. 가정에서, 관계에서, 말과 행동으로 깊이 찔린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교회 안에서조차 충분한 위로를 경험하지 못하고, 그냥 참고 지나가자~ 덮어 두자~ 하는 말 속에 더 깊이 숨게 되기도 합니다.상처 입고 울부짖는 다말의 울음을 들어 줄 수 있는 공동체~ 너의 잘못이 아니다~ 너는 여전히 존귀한 하나님의 딸이고 아들이다~ 라고 말해 줄 수 있는 공동체~ 피해자의 상처를 외면하거나, 조용히 덮는 것만을 평화라고 부르지 않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20절에 압살롬은 상황을 알고 다말에게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말라. 그는 네 오라버니 암논이니라~ 라고 말합니다. 겉으로 보면, 더 큰 소동을 막기 위해, 집안을 지키기 위해 조용히 넘어가자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 침묵은 치유를 위한 침묵이 아니라, 분노를 품고 복수를 준비하는 침묵이었습니다.
성경은 압살롬이 자기 누이 다말로 말미암아 암논을 미워하여 결국 몇 년이 지나 암논을 살해하게 된다고 전합니다. 평화 뒤에는 불이 꺼지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마음 속에서는 불만과 원망과 분노가 점점 더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다윗의 방관이 이 비극을 완성합니다.
다윗은 이 일을 듣고 심히 노했지만, 암논에게 아무런 징계도, 공의로운 대처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로서, 왕으로서 분명한 죄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의 침묵은 아들들에게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주었고, 압살롬에게는 아버지는 정의를 세우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실망과 분노를 심어주었습니다.
우리도 종종 비슷한 실수를 합니다.
가정에서 분명히 잘못된 일인데도, 문제를 직면하는 것이 두려워서, 혹은 귀찮아서 모른 척합니다. 그러는 사이, 피해자의 상처는 깊어지고, 다른 이들의 마음속에는 분노와 실망이 쌓여 갑니다.
복음 안에서의 침묵은 죄를 덮는 침묵이 아니라, 회개와 치유를 위해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침묵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의 침묵은 진실을 감추고, 공의를 세우지 못하며, 결국 더 큰 폭발로 이어지는 침묵입니다. 우리는 우리 가정과 공동체에서 어떤 침묵을 선택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이 사건의 결말은 매우 어둡습니다. 암논은 욕망을 사랑이라 착각했고, 욕망이 채워지자 극심한 미움으로 돌변합니다. 다말은 찢긴 옷을 입고 황폐한 삶을 살게 됩니다. 압살롬은 침묵 속에서 분노를 키우다가 살인자가 됩니다. 다윗은 분노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버지, 방관자에 머무르고 맙니다. 사랑이 없는 욕망, 피해자의 상처, 침묵 속에 자라는 분노, 공의를 세우지 못하는 리더십이 한 가정을, 한 왕가를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지 않습니다.
다윗의 집안은 죄와 상처와 분열로 가득하지만, 하나님은 이 무너진 가문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시고, 결국 이 가문의 혈통 가운데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십니다. 인간의 죄와 비극이 최선을 다해 역사를 무너뜨리려 해도,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도 구원의 길을 여십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각자의 자리를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혹시 암논과 같은 자리, 내 욕망을 사랑이라 포장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그렇다면 주님 앞에 죄를 인정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은 죄인을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고 새롭게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나는 다말처럼 깊은 상처와 수치, 황폐함 속에 살고 있지는 않은지, 그렇다면 주님께 상처를 가져가야 합니다. 사람은 다 이해하지 못하고, 다 들어 주지 못해도, 주님은 우리의 눈물을 아십니다. 찢긴 옷을 다시 입히시고, 무너진 마음을 싸매시는 분이십니다.
나는 압살롬처럼 분노를 품은 채 침묵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 분노를 홀로 품고 있지 말고, 주님께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복수의 자리에서 내려와, 사랑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알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관자의 자리에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께 용기를 구해야 합니다. 진리를 말할 용기, 죄를 죄라고 말할 용기, 상처 입은 자 곁에 서 줄 용기를 구해야 합니다.
21절을 보면 다윗 왕은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였다고 나옵니다.
분노는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다음에 다윗이 무엇을 했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다윗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권위를 가진 아버지가 침묵했습니다.
22절은 압살롬이 암논에게 좋은 말도 나쁜 말도 하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 독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2년 후 압살롬은 암논을 잔치에 초대해 죽입니다(삼하 13:28-29). 그 이후 압살롬의 반역이 이어지고, 다윗 왕국은 내부에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죄가 치유되지 않으면, 상처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것은 반드시 더 큰 비극으로 폭발합니다. 다말 한 사람의 눈물을 무시한 대가가 왕국 전체를 흔들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숨겨지는 죄는 없습니다. 처리되지 않은 악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자가 붙어 돌아옵니다. 이것이 죄의 법칙입니다.
내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고 침묵으로 덮어둔 상처나 분노가 있다면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필요하다면 도움을 구하십시다. 또한 내가 다른 사람에게 입힌 상처가 있다면, 오늘 용기 있게 직면하고 회복의 첫 걸음을 내딛으십시다.
다윗은 분노했지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은 침묵했지만 내면에 복수를 키웠습니다. 2년 후, 압살롬은 암논을 술자리에서 죽입니다. 그 이후 압살롬의 반역, 다윗의 도피는 이 모든 비극의 씨앗이 되어집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 나의 과거나 두려움이나 이해관계 때문에 침묵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분노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의로운 행동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울부짖음을 들으셨습니다. 성경은 당신의 이름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입었던 채색옷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존엄과 정체성을 다시 입혀주실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해 주어서 사랑하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의 연약함과 상처까지도 품으려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에서 멀어질수록, 우리는 암논의 자리와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각자가 하나님께 조용히 기도하며, 내 안에 있는 암논을 보게 하시고, 내 안의 다말의 눈물을 위로해 주시고, 내 안의 압살롬의 분노를 다스려 주시고, 내 안의 다윗의 침묵을 깨우셔서, 주님의 공의와 사랑을 세우는 사람이 되어 응답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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