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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무엘하 9:1-6
제목 : 언약을 기억하고 은총을 베푸는 자
1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2 사울의 집에는 종 한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시바라 그를 다윗의 앞으로 부르매 왕이 그에게 말하되 네가 시바냐 하니 이르되 당신의 종이니이다 하니라
3 왕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 저는 자니이다 하니라
4 왕이 그에게 말하되 그가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 하니라
5 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그를 데려오니
6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그가 이르기를 보소서 당신의 종이니이다
사무엘하 9장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은혜의 장면 중 하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본문을 단순히 다윗의 의리 있는 행동으로 읽고 지나칩니다. 그러나 이 본문을 꼼꼼히 볼 때, 우리는 여기서 단순한 인간적 미담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 구조 전체가 압축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무엘상 18장부터 20장에 걸쳐 다윗과 요나단은 깊은 우정과 함께 언약을 맺습니다. 사무엘상 20:15에서 요나단은 다윗에게 이렇게 요청합니다. "너는 내 후손에게 영원히 은혜를 베풀겠다고 맹세하라." 다윗은 이 언약을 맹세했고, 요나단은 전쟁에서 전사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다윗이 왕이 된 후 사무엘하 9장이 펼쳐집니다. 다윗은 그 언약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엘하 4:4에 보면 므비보셋은 이미 소개됩니다. 사울과 요나단이 전쟁에서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던 날, 므비보셋의 유모가 그를 안고 도망하다가 떨어뜨렸고, 그 사고로 두 발을 다 절게 되었습니다.
권력이 바뀌면 사람들은 전 왕조의 흔적을 지웁니다
므비보셋은 망한 왕가의 유일한 후손, 몸까지 불편한 존재로 변방에 숨어 살고 있었습니다. 사울의 후손들은 숨어 살아야 했습니다. 고대 근동의 정치 관습상 왕조가 바뀌면 전 왕조의 후손은 모두 제거되었습니다. 므비보셋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 숨어 있었습니다.
특히 므비보셋은 두 발이 다 저는 장애인으로, 로드발 이라는 변방 땅에 숨어 있었습니다. 세상의 논리로는 잊혀지고, 두려워하고, 사라져야 할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를 찾습니다.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그림으로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1절 말씀에 이 모든 일의 시작이 다윗에게서 비롯된다는 사실입니다. 므비보셋이 왕궁을 향해 청원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먼저 묻습니다. "사울의 집에 아직 남은 사람이 있느냐?"
다윗 주변의 신하들도 처음에는 이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목적은 달랐습니다. 은총을 베풀기 위해 찾는 것입니다.
여기서 번역된 "은총"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 원문에서 헤세드 입니다. 헤세드는 성경에서 가장 깊고 풍성한 의미를 가진 단어 중 하나로, 단순한 친절이나 호의가 아닙니다. 헤세드는 언약에 근거한 변함없는 사랑과 신실함을 의미합니다.
다윗이 베풀려는 것은 감정적인 동정심이 아닙니다. 내가 약속했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랑 입니다. 이것이 헤세드입니다.
1절 후반부에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라고 합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을 찾는 이유는 므비보셋이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요나단과의 언약 때문입니다. 므비보셋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는 단지 요나단의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로 왕의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는 받을 자격을 갖춘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언약에 근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도 우리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진 언약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 8절 말씀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것이 은혜의 핵심입니다. 은혜는 받는 자 안에 근거가 없습니다. 은혜는 주는 자의 언약과 사랑 안에 근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도 우리가 착해서, 열심히 노력해서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진 새 언약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1:6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2절에서 4절 말씀에 은혜는 먼저 찾아옵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을 즉시 알지 못합니다. 수소문의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시바라는 사울의 옛 종을 불러 묻습니다. 이 과정이 중요합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명령 한 마디면 모든 것이 가능한 위치에 있었지만, 먼저 사람을 보내고, 묻고, 찾는 과정을 거칩니다. 은혜는 찾는 수고를 동반합니다.
므비보셋이 왕궁을 향해 나아간 것이 아닙니다. 왕이 먼저 찾아온 것입니다.
므비보셋이 숨어 있던 곳은 로드발입니다. 이 지명의 히브리어 의미는 학자에 따라 다소 다르게 해석되지만 가장 유력한 해석은 "풀밭이 없는 곳", "아무것도 없는 곳"입니다. 즉 로드발은 요단 강 건너편 길르앗 지방의 외딴 변방 지역으로, 말 그대로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척박한 곳이었습니다.
므비보셋은 거기 숨어 있었습니다. 왕궁의 화려함에서 멀리,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리, 왕의 손이 닿지 않을 것 같은 그 깊은 곳에, 그런데 바로 그곳까지 왕의 사자가 찾아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죄의 로드발에 숨어 있을 때,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누가복음 19:10절 말씀에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시바가 보고하면서 한 가지 정보를 덧붙입니다. "다리 저는 자니이다." 이 말의 뉘앙스를 잘 읽어야 합니다. 시바의 이 한마디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고대 사회에서 장애는 종종 결격 사유로 여겨졌습니다. 레위기 21장에도 몸에 흠이 있는 제사장은 제단에서 봉사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이 있을 정도로, 당시 문화에서 신체적 결함은 사회적 약자의 상징이었습니다.
시바는 어쩌면 이렇게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왕이시여, 찾아보니 한 명 있기는 한데, 다리까지 저는 자입니다. 왕의 수고를 들일 만한 인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말에 전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4절에서 즉각적으로 묻습니다. "그가 어디 있느냐?" 므비보셋의 상태는 다윗의 은혜를 막는 조건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연약함, 부족함, 결함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막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린도전서 1:27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1절에서는 "은총을 베풀리라"라고 했는데 3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이 표현은 '엘로힘의 헤세드'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베푸는 은혜가 단순히 인간적 호의가 아님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은혜입니다.
이 표현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베푸는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의 모형입니다.
6절 말씀에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그가 이르기를 보소서 당신의 종이니이다
므비보셋의 이름 뜻은 수치를 없애는 자 혹은 어떤 해석에 따르면 입에서 나온 부끄러움 입니다.
그 이름을 왕이 직접 부릅니다. 왕의 입에서 이름이 불릴 때, 그것은 단순한 호명이 아닙니다. 관계의 선언입니다.
우리는 모두 므비보셋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므비보셋과 같습니다. 두 발이 저는 불완전한 존재, 죄로 인해 숨어야 했던 존재, 스스로는 아무 자격이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언약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먼저 찾아오셔서, 왕의 상에 함께 앉게 하셨습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을 왕자처럼 대우하며 왕의 밥상에 함께 앉힌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그 상에 함께 앉히셨습니다.
이 은혜에 우리는 므비보셋처럼 엎드리는 것입니다. 내 공로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감사와 경배로 그분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마길의 집에 몸을 의탁하고 있었습니다. 마길은 이 지역의 유력자로, 므비보셋을 보호해 주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사무엘하 17장에서 마길은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길 때 다윗을 도운 사람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그는 의리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나는 어떤 '로드발'에 숨어 있습니까? 두려움입니까, 실패입니까, 수치심입니까? 왕이신 예수님은 지금도 그 자리에서 당신을 찾고 계십니다. 그 은혜의 손길을 붙잡으십시오.
왕이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 그 음성에 응답하십시오. 보소서, 당신의 종이니이다 라고 고백하며 그분 앞에 나아오십시오. 그것이 헤세드, 언약의 은혜 앞에 선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응답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보소서, 당신의 종이니이다 라는 고백으로 오늘을 사는 신암의 공동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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