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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무엘하 11:14-21
제목 / 끝까지 충성한 자를 기억하시는 하나님
14 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니
15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16 요압이 그 성을 살펴 용사들이 있는 것을 아는 그 곳에 우리아를 두니
17 그 성 사람들이 나와서 요압과 더불어 싸울 때에 다윗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엎드러지고 헷 사람 우리아도 죽으니라
18 요압이 사람을 보내 그 전쟁의 모든 일을 다윗에게 보고할새
19 그 전령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전쟁의 모든 일을 네가 왕께 보고하기를 마친 후에
20 혹시 왕이 노하여 네게 말씀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에 그처럼 가까이 가서 싸웠느냐 그들이 성 위에서 쏠 줄을 알지 못하였느냐
21 여룹베셋의 아들 아비멜렉을 쳐죽인 자가 누구냐 여인 하나가 성에서 맷돌 위짝을 그 위에 던지매 그가 데벳스에서 죽지 아니하였느냐 어찌하여 성에 가까이 갔더냐 하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라
어저께에 이어서 오늘 본문은 어떻게 다윗이 이런 일을 했지 할 정도의 얘기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윗이 받은 은혜와 이전의 그의 모습을 떠올로 보면 도저희 상상하기 힘든 다윗의 모습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베드레헴의 일개 목동에 불과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사울을 이을 왕이 되게 하셨고 사울의 살해 위협으로부터 다윗을 보호하셨고 하나님은 다윗을 존귀하게 하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막강한 나라로 세우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였고 하나님을 찬양하였고 그러한 시편이 무수하게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후에 다윗은 하나님의 궤가 장막에 방치되어 있는 것을 가슴 아파했고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을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다윗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가 읽고 있는 사무엘하 11장은 도저히 우리가 아는 다윗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다윗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부하 장군인 우리의 아내 밧세바를 끌어들여 간음했습니다. 밧세바가 임신한 소식을 전해오자 이를 덮기 위해서 우리아 장군에게 특별휴가를 주어 아내와 지내게 했습니다. 잉태된 아기를 우리아의 아기로 위장하려고 한 것이죠. 그러나 충직한 우리아 장군은 자신만 편하게 지낼 수 없다면서 집에 가지 않았고 다윗의 계획은 실패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4절은 다윗의 더 큰 악행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우리아를 전선으로 보맨서 총사령관 요압 장군에게 밀서를 전달하게 했는데 그 편지의 내용에는 우리아를 치열한 전선에 배치하여 적의 칼에 죽게 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이죠. 우리아는 편지의 내용도 모른채 요압에게 전달했고 결국 적의 칼에 죽고 말았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은혜를 누구보다 많이 받은 다윗이 저지른 악행이었습니다. 이런 악행은 평범한 사람은 아예 생각도 못할 그런 악행이죠.
여러분 누구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다윗이 어떻게 이런 끔찍한 악행을 저지르게 된 것일까요? 분명한 한 가지는 다윗의 성공이 가져온 결과라는 것이죠. 일반 평민이 남의 유부녀가 마음에 든다고 해서 자신의 집으로 아무나 끌어들일 수 있습니까? 불가능한 일이죠.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권력을 통해 말 한마디로 밧세바를 끌어들였고 간음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죠. 거기다가 그 죄를 은폐하기 위해서 우리아도 왕궁으로 끌어들입니다. 우리아에게 특별휴가를 주는 것 역시 다윗이 그런 권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그래서 자신의 죄를 덮으려 했으나 그게 실패로 돌아가게 되자 우리아를 가장 치열한 전선에 배치하게 되죠. 이 역시 다윗에게 권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평범한 사람은 생각조차 하지 못할 악행을 결국은 다윗의 권력 때문에 다시 말해 그의 성공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두가 다 성공을 위해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쫓아다니고 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성공이라는 게 오히려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다윗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삼손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하나님은 삼손이 태어나기 전부터 그를 구별하여 나실인으로 살게 하시고 그를 통해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삼손에게 전무후무한 엄청난 힘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하나님이 주신 힘을 오히려 자신의 안전과 욕망의 도구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이 삼손에게 적과 싸우라고 힘을 주실수록 삼손은 자신이 천하무적인 양 기고만장해서 자기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삼손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엄청난 힘이라는 복이 도리어 하나님을 잊고 순종하지 않는 이유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공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역경은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지만 성공은 역경이 주는 것보다 더 큰 어려움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최악의 저주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 24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하나님이 내리시는 최악의 저주가 무엇입니까? 마음의 정욕대로 내버려 두사 다시 말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에도 아무런 징계도 하지 않고 그 마음에 갈망하는 성공을 허용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성공이 크면 클수록 그 사람은 하나님과 멀어지게 될 위험이 더 커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공은 독이 든 잔과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도 자기 스스로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인 줄 믿습니다. 힘들고 약할 때는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러나 반대로 형통할 때는 오히려 사람을 바라보고 자신의 영광을 구하기 너무나 쉬운게 우리의 모습임을 결코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오늘 다윗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다윗만큼의 권력이 다시 말해 그런 성공이 없기 때문에 나랑은 크게는 상관 없는 이야기로 읽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다윗과 같은 죄를 지을려고 해도 짓기가 어려울 수 있겠지만 그러나 결국 죄라는 것은 같은 주제가 여러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죄는 자기 생명을 자기가 주관하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해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사울의 실패 역시 마찬가지이지 않습니까? 아무리 왕이어도 제사는 제사장만 드릴 수 있지만 사울은 월권행위를 하며 제사를 드렸고 결국 사무엘로부터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을 듣고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 되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보다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고 한 결과였죠.
다윗의 이런 이야기를 읽으며 아니 어떻게 다윗이 이런 상상못할 죄를? 그렇게 말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다윗의 이야기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가 다윗의 죄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죄는 존재하고 반복된다는 점에서 우리의 죄는 다윗의 죄와 본질적으로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으로 짓는 죄 역시 다윗과 연결되어 잇는 것이죠.
우리가 죄를 짓는 이유는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보다 죄를 지으려는 성향이 더 크다는 것이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죄를 안 지었겠죠. 만약 다윗이 자신이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잊지 않고 살았다면 죄를 짓지 않았겠지만 그러나 다윗은 그 은혜를 망각했고 결국 은혜로 받은 권력과 성공이 오히려 죄를 짓는 도두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다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이지만 아들까지 아끼신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은혜를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는 죄된 모습을 거부하고 날마다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하루 나의 모습을 통해 예수님이 드러는는 복된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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