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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15일 새벽설교요약
    2024-05-15 05:50:00
    신일철
    조회수   18

    누가복음22:63~71

     

    우리는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길을 함께 걸어가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어제까지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수많은 이적과 기사를 경험한 제자들이 하나같이 다 예수님을 떠나간 사건과 그 중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체포하는 일에 길잡이가 되어 예수님을 팔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넘겨준 이야기, 그리고 수제자라고 불리는 베드로가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3번 부인하고 도망한 이야기,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것을 아셨던 예수님은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어린양처럼 묵묵히 걸어가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예수님의 걸음을 사도행전8:32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32.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아멘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과 신약의 말씀이 증거 하듯이 도살자에게 끌려가는 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있는 어린 양처럼, 잠잠히 그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이 걸음을 걸어가신 예수님에게 어떤 일들이 또 기다리고 있었는지 오늘 본문은 더 자세하게 그 자리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63절입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63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키는 사람들은 <강제로 붙잡고 있는>사람을 뜻합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들의 하속들이 예수님을 강제로 포박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강제로 포박한 예수님을 이들은 희롱하고 때렸습니다.

    여기서 <희롱>이라는 단어와 <때렸다>는 단어를 자세히 알기 원하는데 먼저 <희롱>은 그 뜻이 <무엇을 가지고 놀다>,<조롱하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마치 노리개를 가지고 놀 듯이 장난치며 조롱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나오는 <때렸다>는 단어는 그 뜻이 <가죽을 벗기다>,<매질하다>입니다.

    이 단어들을 정리해보면 예수님께서 잡혀가신 그 밤에 대제사장들의 하속들에게 저항하지 못하게 강제포박 당하시고 노리개 다루듯 예수님을 조롱하고 매질을 가했습니다.

    그 매질이 얼마나 강했던지 피부 조직이 완전히 벗겨질 정도였습니다.

    64절은 예수님의 조롱과 매질에 대해서 한 장면을 소개하는데 예수님의 눈을 가리고 누군가가 사정없이 예수님을 때립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선지자 노릇 하는 예수! 너가 그렇게 신통력이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너를 때린 사람이 누군지 맞쳐보라고 말합니다.

    이 외에도 입에 담을 수 없는 수많은 말로 예수님을 욕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밤이었을까요? 삶을 드려 함께했던 제자들은 모두 배신하고 도망갔고 남은 것이라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부르는 이들에게 조롱과 수치와 매질뿐이었으니, 그 밤이 얼마나 고통이었겠습니까?

    그렇게 그렇게 밤이 지나고 날이 새면서 백성의 장로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산해드린 공회에 모였고 예수님을 그 자리에 세웠습니다.

    여기서 산헤드린 공회는 모세의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기관으로 종교계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권위 있는 기관이며 최고의 재판 기관이었습니다. 바로 이곳에 예수님을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곳에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너가 그리스도냐?>67절에 질문합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즉 메시야를 말합니다. 메시야가 어떤 존재입니까? 메시야는 구약과 신약의 유대인들이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던 구원자입니다. 그러니 너가 그리스도냐는 질문은 우리를 구원할 메시야가 너냐?라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질문에는 간교한 계략이 숨어있었는데 당시 유대 지역은 로마의 식민지 아래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아무리 최고 재판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라해도 사형 집행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꾸며낸 것이 당시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메시야관을 이용해 예수님이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면 로마법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정치적 혁명가로 고소하여 예수님을 죽이고자 계획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 질문에는 예수님을 죽이려고하는 악한 계략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성도님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수난의 배후에 누가 있다고 전에 말씀드렸습니까? ! 사단 마귀의 계략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단은 할 수만 있다면 예수님을 넘어뜨려 하나님의 뜻대로 걸어가지 못하도록 음모를 꾸몄습니다. 기억해보십시오! 광야에서 3가지의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너의 필요와 욕구를 주목하게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걸음을 걷지 못하도록 부추겼고 하나님 나라를 전하면서도 수많은 고난과 핍박을 경험하게 하였고 무엇보다 예수님이 양육했던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을 팔고 부인하고 도망하여 하나님 뜻대로 걸어가는 그 길이 얼마나 헛되고 소용없는 길인지 경험하게하여 하나님의 뜻에서 회유하도록 유혹했습니다.

     

    왜 사단은 이렇게 끝까지 하나님의 길을 걷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요? 그 길 끝에는 대체 무엇이 있길래 이러는 걸까요?

    그것은 그 길 끝에는 하나님의 완전한 승리가 기다리고 있고 사단의 철저한 패배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할 수만 있으면 그 길을 막고자 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69절에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장수에게는 큰 잔치를 베풀고 왕의 옆자리에 앉게 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에게 주어지는 큰 명예이고 왕의 통치권에 참예하는 상징적인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는다는 것은 만물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통치하고 다스리는 동반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당신이 창조하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들의 모든 죄를 지고 죄인의 신분으로 산헤드린 재판에 섰지만 이 후에 부활과 승천이 기다리고 있기에 결국은 하나님의 완전한 승리로 이 여정이 끝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떠한 회유와 유혹, 협박과 핍박 그리고 죽음이 있다 하여도 묵묵히 하나님의 뜻을 쫓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따라간 사도바울도 복음 때문에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제2차 전도여행 때 개척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이렇게 편지합니다.

    빌립보서3:7~14(신약321p)입니다.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2)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3)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도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사도바울처럼 하나님이 보여주신 푯대를 향하여, 그리고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이 길은 어느 특정한 사람이 걸어가야하는 길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걸어가야하는 길입니다.

    그 길에는 분명히 여러 모양의 어려움과 사단의 회유와 유혹이 있을 것입니다. 사단은 할 수만 있다면 그 길을 걷지 못하게 우리를 시험할 것이고 넘어뜨리려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길을 먼저 가셨고 이 길 끝에서 내 사모하는 주님을 만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푯대를 향하여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갈 수 있도록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야 합니다. 때로는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때는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멈춰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이 길이 생명의 길이고 이 길이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붙잡고 걸어가는 이 길 끝에서 우리 모두가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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