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나눔방
빌립보서1:27~2:4
우리는 3일동안 교회 공동가 무엇인지 함께 살피게될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읽은 빌립보서를 기록한 사도바울은 우리가 잘 알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사도바울이 로마 감옥에 투옥된 상황이었습니다.
비록 그의 형편은 감옥에 투옥된 상황이었지만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여 감사한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당시 빌립보교회, 빌립보 성도들은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아주 특별했습니다. 왜냐하면 빌립보교회는 사도바울이 제2차 전도 여행 중에 마게도냐 지방에서 처음으로 개척한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빌립보는 과거에는 마케도냐에 속해있던 지역이었지만 현재는 그리스에 속한 지역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유럽에 최초로 세워진 교회가 바로 빌립보교회였다는 것이죠!
그러니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빌립보 성도들은 아주 특별했고 빌립보 성도들도 사도바울은 아주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을 통해 처음 복음을 접한 이후 계속해서 바울과 친밀한 관계를 지켜오면서 그의 사역에 동역하기를 원했고 여러 차례 물질적으로 사도바울의 사역을 후원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나누겠지만 빌립보교회는 로마 감옥에 투옥된 사도바울을 위해 후원금을 전달하고 그의 필요를 돌보기 위해 에바브로 디도를 사도바울에게 파송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을 살피는 도중 에바브로 디도가 죽음 직전에 까지 이르는 중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빌립보 성도들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지도자 사도바울도 감옥에 투옥되었고 그를 돕기위해 보낸 에바브로 디도도 중병에 걸렸다고 하니 빌립보 성도들의 근심이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에바브로디도는 회복되었고 다시 빌립보교회로 환송하게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과 함께 동역하고 있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나누고 회복된 에바브로디도를 환송시키면서 그가 얼마나 헌신적으로 자신을 도왔는지 빌립보 교회에게 알리고 에바브로디도를 따뜻하게 맞아줄 것을 당부하면서 이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옥중서신과 다르게 아주 개인적이고 감사와 따뜻함이 여기저기에 묻어있는 편지입니다.
그럼 빌립보교회에는 문제가 없었나? 그것은 아닙니다. 빌립보교회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28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아멘
말씀처럼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사도바울은 언급하고 있습니다. 당시 빌립보교회가 위치한 빌립보라는 지역은 페르시아를 무너뜨린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립 2세가 금광을 발견하여 세워진 도시가 바로 빌립보였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빌립보라고 이름하였습니다. 한편 아버지를 이어 그리스를 통일하고 페르시아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은 자신이 가는 곳곳마다 헬라 문화와 헬라 종교를 심었습니다. 헬라 종교는 우리가 잘 알듯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 신, 아폴로 신, 포세이돈 신과 같은 신들을 섬기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헬라 종교는 여러 신들을 섬기는 다신교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 빌립보라는 지역을 지도로 보면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는 교도부 위치에 있기에 아시아와 애굽 그리고 그 땅에 과거부터 섬겨왔던 페르시아의 신까지 합세하여 셀 수 없는 수 많은 신들이 복잡하여 엉켜있었습니다.
심지어는 헬라인들이 실수로 숭배 대상에서 빠진 신이 있을까 염려하여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제단까지 만들어 숭배하는 일이 이 헬라 종교 안에 있을 정도였습니다.
바로 이 헬라 종교가 뿌리 박힌 빌립보에서 다른 신들은 다 우상이며 거짓이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라고 믿고 있는 빌립보교회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비난의 타겟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교회 밖에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은 이교도들에게 비난과 핍박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는 문제가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 빌립보교회 내에서는 유대 율법을 강조하여 사람들로 복음에서 떠나게하는 율법주의자들이 활동하고 있었고 육은 악하고 영은 깨끗하기 때문에 악한 육체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영지주의자들을 중심으로 도덕을 반대하는 반도덕주의자들의 활동이 교회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4장에서 밝히는 것과 같이 유오디아와 순두게 두 여인 사이의 불화로 인하여 빌립보교회 안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을 알았던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 2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함께 읽겠습니다.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아멘
먼저 사도바울은 이렇게 어수선한 빌립보교회에 도전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에 직면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내야된다고 도전하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의 이 도전처럼 믿음은, 신앙은 말로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해 내야하는 것입니다.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내는 것은 누구나 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직임이 있다하여 속지 마십시오! 그 직임이 그 사람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 사람을 말하는 것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직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태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살아냄으로 믿음을 증명하십시오!
사도바울은 이렇게 빌립보 성도들이 직면해 있는 어려운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상황을 회피하거나 모르는척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복음에 직면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내는 것에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빌립보교회 공동체에게 한가지 강조하며 요청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됨입니다.
특별히 27절 중반부를 보시면 사도바울은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기 원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한마음으로 서서라는 단어가 보이시죠! 여기에 <서서>라는 단어에는 <전투가 아무리 치열하더라도 자기 초소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지키려는 전사가 그려지는데 그 어떤 위협과 고통이 따른다 해도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는 그 자리에서 물러서지 말고 굳게 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 공동체가 하나된 마음으로 서라고 도전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27절 하반절에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협력하라>는 것입니다. <협력하라>는 원어의 뜻은 <굳게 뭉쳐 협력하다, 함께 투쟁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는데 지난주에 프랑스 올림픽에 출전한 팬싱 단체전 선수들이 생각났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상대방 선수들과 한명 한명씩 번 가라 가며 싸웠는데 꼭 운명 공동체처럼 하나의 마음으로 굳게 뭉쳐서 싸우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데 저도 그 선수들중에 한 사람처럼 함께 응원하고 목소리 높여서 싸우고 있더라구요! 그리고 그 단체전 경기에서 결국 금메달을 땄습니다.
바로 <협력하라>는 사도바울의 이 외침은 이 팬싱 단체전에 참여한 운명 공동체의 선수들처럼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굳게 뭉쳐 협력하고 함께 투쟁하라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2장 2절에서도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으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살아내는 공동체는 하나됨을 추구합니다. 그 안에는 서로를 지킴이 있고 보호가 있고 세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어려움이 찾아와도 함께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전도서 4:12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아멘
이처럼 하나됨, 한 마음과 한 뜻을 품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깨어진 공동체는 그 안에 하나됨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안에는 분리가 있고 지적이 있고 자기 주장만이 관철되기를 바랍니다. 거기에는 기다림이 없고 품어줌이 없습니다. 그래서 생명력을 상실해 버리는 것입니다. 바로 사도바울은 빌립보교회가 하나됨으로 복음 앞에서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했고 하나됨으로 직면한 어려움을 돌파해 나가길 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하나됨의 요구는 단지 빌립보교회에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인 우리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됨은 쉽지가 않습니다. 나도 좋고 너도 좋고해서 하나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땅에 떨어진 씨앗이 죽어야 싹이 나고 자라며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과 같이 내가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하나님의 은혜가 전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살아계신 성령께서 우리 교회 공동체에 오시기 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위해 죽고 세워주는 은혜가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
3392 | 5월 7일 새벽기도회 설교요약 | 이승민 | 2025-05-07 | 2 | |
3391 | 5월 6일 새벽기도회 요약 | 이승민 | 2025-05-06 | 3 | |
3390 | 5월 5일 새벽기도회 요약 | 이승민 | 2025-05-05 | 2 | |
3389 | 온가족 토요 새벽 기도회(5월 3일) 설교 요약 | 곽숭기 | 2025-05-03 | 7 | |
3388 | 5월 2일 새벽설교 요약 | 김성호 | 2025-05-02 | 5 | |
3387 | 5월 월삭기도회 설교 요약 | 곽숭기 | 2025-05-01 | 5 | |
3386 | 4월30일 새벽설교 요약 | 김두리 | 2025-04-30 | 6 | |
3385 | 4월29일 새벽설교 요약 | 김두리 | 2025-04-29 | 5 | |
3384 | 4월28일 새벽설교 요약 | 김두리 | 2025-04-28 | 4 | |
3383 | 온 가족 토요 새벽 기도회(4월 26일) 설교 요약 | 곽숭기 | 2025-04-26 | 6 | |
3382 | 4월 25일 새벽설교 요약 | 이승민 | 2025-04-25 | 5 | |
3381 | 출애굽기 제29장 | 노영숙 | 2025-04-24 | 5 | |
3380 | 4월 24일 새벽설교 요약 | 이승민 | 2025-04-24 | 7 | |
3379 | 4월 23일 새벽설교 요약 | 김성호 | 2025-04-23 | 7 | |
3378 | 4월 22일 새벽설교 요약 | 김성호 | 2025-04-22 | 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