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나눔방
본문: 학개 2:10~17
설교: 너희는 내게로 돌이키라
어제, 바벨론 포로기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이 무너진 성전을 다시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과거 솔로몬 성전의 화려함을 기억하던 노인들은 지금 지어지는 성전의 초라한 외형을 보며 낙심했지요.
그때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통해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하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건물의 크기가 아니라, 장차 이 땅에 오실 참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임할 진짜 영광을 바라보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 은혜롭고 가슴 벅찬 약속이 있은 후, 성전 공사를 다시 시작한 지 딱 석 달쯤 지난 시점의 이야기입니다.
10절을 보면 “다리오 왕 제이년 아홉째 달 이십사일” 이라고 정확한 날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학개 선지자에게 또다시 찾아오셨습니다. 여러분, 왜 찾아오셨을까요?
앞서 약속하셨던 그 찬란한‘나중 영광’과‘평강’이, 그저 성전 뜰에 앉아 귀로만 듣는 뜬구름 잡는 얘기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실제 삶’속에서 어떻게 경험될 수 있는지, 그 영적인 원리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10절과 11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면서, 제사장들에게 가서‘율법(토라)’에 대하여 물어보라고 명령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율법’하면 우리를 죄인 취급하며 옭아매는 무서운 법 조항,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는 무서운 규율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어로 율법을 뜻하는‘토라’는 원래‘화살을 쏘다’‘가르치다’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율법은 우리를 정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험하고 헷갈리는 세상 속에서 과녁을 벗어나지 않도록 올바른 방향을 정확하게 짚어주는
‘사랑의 가르침’이자, 내 인생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이끌어주는‘인생의 내비게이션’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아주 흥미로운 두 가지 질문을 던지는데요....
첫 번째 질문(12절)입니다.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음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제사장들이 율법에 근거하여 아주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아니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습니다. 거룩은 전염되지 않습니다.
거룩한 고기를 쌌다고 해서 그 옷자락이 스치는 모든 것이 자동으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 질문(13절)입니다
“시체를 만져서 부정해진 자가 만일 그것들 가운데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제사장들이 뭐라고 대답을 대답합니까? “부정하리라!”
맞습니다. 죄의 오염.., 부정함은 너무나 쉽게 온 사방으로 전염됩니다.
거룩은 내가 발버둥 치고 애를 써야 유지되지만, 죄와 부정함은 잉크가 물에 번지듯 내 삶의 모든 영역을 순식간에 오염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갑자기 율법에 대해 물어보셨을까요?
당시 백성들의 마음속에 은근히 자리 잡은‘영적인 이기주의’와‘착각’을 깨부수기 위함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성전 공사를 석 달쯤 하다 보니 은근한 계산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헌신해서 성전 공사를 시작했으니,
이제 하나님이 알아서 농사도 대박 나게 하시고 복을 쏟아부어 주시겠지...?”
마치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 음료수가 툭 떨어지듯, 내가 성전 건축을 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복의 대가가 당연히 돌아올 것이라 착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어지는 14절에서 학개 선지자의 입을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평가는 참으로 뼈아픕니다.
14절입니다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들의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백성들은 나름대로 성전이라는 거룩한 모양은 붙잡고 있었습니다. 제단도 쌓았습니다. 예배도 드렸습니다.
그러나 마음 중심의 철저한 회개와 삶의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그 부정한 손으로 드리는 예배와 예물,
심지어 그 손으로 짓는 농사까지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 무효이며, 부정하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화려한 성전 건물에 관심이 있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 건물을 짓고 있는‘너의 마음’이,‘너의 중심’이 진짜 나를 향해 있는가를 묻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구절이 바로 17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은 백성들의 일상 속에 뜨겁고 건조한 동풍이 불게 하여“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지나친 습기로 식물이 썩어가는 병에 걸리는“깜부기 재앙”그리고“우박”을 내리셨다고 합니다.
바짝 말라 죽는 것과 축축하게 썩어 죽는 것..,
이 상반된 자연환경의 모든 영역을 동원하셔서 그들의 생업을 치셨습니다. **이 징계가 얼마나 뼈아팠겠습니까?
그런데 17절의 맨 마지막을 유심히 보면, 우리 성경에는“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느니라”고 부드럽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을 히브리어 원문 그대로 직역하면, 너무나 슬픈 하나님의 탄식이 나옵니다.
“그러나 너희에게 내가 없다.” (But you have no Me.)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집을 짓겠다고 망치를 들고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제사도 드렸습니다.
겉으로 보면 누가 봐도 훌륭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동자로 그들의 영혼 깊은 곳을 꿰뚫어 보았을 때, 그들의 마음 중심에는‘하나님’이 없었습니다.
그저 축복을 받아내기 위한 종교적인 행위, 나의 만족과 위안을 위한 이기적인 계산만 가득 차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아모스 4장 9절]의 말씀에 보면
“내가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으로 너희를 쳤으며 팥중이로 너희의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다 먹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모스 시대에도, 학개 시대에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제물이 아니었습니다. 재앙을 내리신 이유도 그들이 미워서 망하라고 주신 저주가 아닙니다. 제발 가던 길을 멈추고 내게로 돌아오라. 껍데기만 남은 종교 생활을... 멈추고 너희들을 마음을 달라는 하나님의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도대체 왜 예배를 드립니까?
**오늘 왜 이 새벽에 피곤한 눈을 비비며 교회에 나와 앉아 있을까요?
**솔직히 돌아보면, 우리 역시 얼마나 많은 순간‘하나님 없는 종교 행위’에 안주하며 스스로를 속이고 살아가지는 않으십니까?
주일이면 어김없이 성경책을 끼고 와서 예배의 자리에 앉습니다. 찬양대원으로, 식당 봉사자로, 교사로 땀을 흘립니다. 십일조도 하고 헌금도 드립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참 믿음 좋은 성도들로 보입니다.
그런데 교회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가는 순간, 정작 내 삶의 은밀한 영역 속에는, 나의 가정과 일터와 가장 가까운 내 배우자와 자녀를 대하는 성품과 언어 속에‘하나님이 없다’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은 무서운 영적 질병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교회 본당에 앉아 있다고 해서 내 인격이 저절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한 번 예수 믿고 회개했으니, 이제 내 삶은 어떻게 살아도 다 구원받은 줄로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받은 백성답게 매일 매일의 일상 속에서 나의 부정함을 씻어내고,
내 손을 성결하게 하며, 참된 성화의 길을 걸어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8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여러분, 신앙은 내 그럴듯한 행위를 포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내 마음 중심을 찢어 주님께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이만큼 교회에 헌신했고 헌금했으니, 하나님도 내 사업 잘되게 하시고 내 자식 잘되게 해 주셔야지....”
이런 거래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 드리는 이 새벽기도회가 나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주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라며 그분의 임재만을 구하는 참된 예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한 옷자락을 흉내 내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됩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의 손으로 짓고 있는 은밀한 죄악, 정직하지 못한 이익, 형제를 향한 미움과 시기와 이기심이 있다면,
이 새벽 십자가의 보혈로 철저히 씻어내야 합니다.
부정한 손으로 아무리 찬양의 두 손을 높이 들어도 하나님은 외면하십니다.
내 일상의 손이 깨끗해질 때, 우리의 예배는 비로소 하늘 보좌에 상달되는 향기로운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 열심히 땀을 흘리는데도 구멍 난 전대처럼, 물질이 줄줄 새어나가는 영역이 있습니까?
**영적인 건조함과 뜨거운 동풍에 바짝 말라가는 가정의 문제가 있습니까?
환경을 원망하거나 사람을 탓하기 전에 조용히 무릎을 꿇고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혹시 내 삶의 이 고통스러운 영역에, 하나님이 빠져 계시지는 않았습니까?”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노릇을 하느라 주님을 문 밖에 세워두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 15절에“이제 원하건데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위에 놓이지 아니하였던 때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과거의 쓰라린 실패를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수고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아니지만, 이어지는 19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우리의 무너진 마음 중심을 다시 십자가로 가져가고, 주님을 향한 간절한 갈망으로 채울 때,
하나님은 바로 그 회개의 순간인‘오늘부터’우리 삶의 회복을 시작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실 때,“너희에게 내가 없다”하시는 가슴 아픈 탄식이 아니라,
“내 사랑하는 자야, 네 마음 중심에 내가 있어서 참 기쁘구나!”하시는 주님의 칭찬을 받는 지혜롭고 신실한 믿음의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종교적인 흉내를 멈추고 내 삶의 진짜 주인이신 주님께로 완전히 돌이키는 이 은혜가,
오늘 하루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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