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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학개 1:1-6
제목 / 하나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라
1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3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4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5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바사의 고레스 왕은 주전 539년에 바벨론을 정복하여 바사 제국에 통합하였습니다.
그리고 정복한 모든 민족에게는 회유 정책을 썼습니다.
고레스 왕은 각 민족이 자신들의 종교를 믿는 것과 고국에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였지요.
이 정책은 곧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큰 변화를 가져 왔는데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희망을 안고 고국 땅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국 땅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성전 재건을 힘썼으나 결과는 실망스러웠습니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두 위대한 선지자를 세우십니다.
바로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인데요.
에스라서에 의하면, 에스라 5장과 에스라 6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이 두 선지자의 활동으로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고국 땅에서 성전을 재건하고 번영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학개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 길은 없습니다.
성경학자들은 포로시기에 바벨론에서 출생하여 살다가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사람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학개서에서 선지자 학개가 증거하고 있는 중심 메시지는 예루살렘의 성전 재건입니다.
학개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의 성전을 수리할 것을 권고하면서 그 재건이 완성되는 날 메시아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주장하였는데요.
그러나 선지자 학개는 고국 땅에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직 성전건축을 위해서만 책망하고 격려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고국 땅으로 돌아온 이스라엘은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돌이켰으며 또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권면을 받아, 그 리더십을 따라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도 열심을 내였었습니다.
그럼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 재건은 18년 동안 중단되고 있었습니다.
선지자 학개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일어난 이 일, 하나님의 성전 재건이 중단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무엇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낙심하게 하고 그들의 열심을 무너뜨리게 하였는지를 살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학개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과 신앙, 믿음의 중심을 꿰뚫어 직면하게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선지자 학개는 이스라엘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정치적으로도 미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시야와 믿음의 전환점을 갖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로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 재건을 완성하도록 독려하고 있는 것이지요.
선지자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만이 유일한 희망이요, 여호와 하나님만이 그들의 소망과 새로운 힘의 원천임을 밝히고 있으며, 하나님께 대한 신앙에 초점을 두도록 힘쓰게 하려 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
1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다리오 왕 제이년...은 B.C. 520년을 말하는데요.
이는 고레스 왕이 스룹바벨을 총독으로 세워 자신들의 포로인 유대인들을 고국으로 귀환시킨 연대를 B.C. 538년으로 보았을 때, 무려 열여덟 해가 지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스룹바벨을 유대 이스라엘의 총독으로 하여 귀환한 유대인들은 그동안 성전을 완공하지 못한 상태로 있었던 것입니다.
선지자 학개가 여기에서 연대를 분명하게 밝힌 의도는 귀환한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성전을 완공하지 못하였음을 지적하기 위함인 듯합니다.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본문의 ‘여섯째 달’은 유다, 이스라엘의 추수 시기에 해당하며, ‘초하루’는 새로운 달을 나타내는 월삭으로 거룩한 날로 보내며 안식해야 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리는 날이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날 선지자 학개를 통해서 모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선지자 학개,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하셨음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는 선지자 학개가 전하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수신자들이 누구인지를 알려줍니다.
바벨론의 포로에서 해방되어 이스라엘로 돌아와 여러 해가 지났으나 여전히 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했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2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는 하나님의 칭호입니다.
‘만군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체바오트’는 군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분임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하는 단어이지요.
선지자 학개는 만군의 여호와, 전능하신 분을 기억하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학개 선지자가 예언할 당시는 바사, 페르시아가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으며,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유다, 예루살렘은 보잘 것 없는 작은 변방의 식민지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학개는 비록 유다, 이스라엘이 여전히 페르시아 제국의 식민지이며 그 현편과 상황이 외적으로는 보잘 것이 없을지라도 또 당시 어마어마해 보이는 페르시아 제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와 다스리심으로 포로에서 해방되어 고국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며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고 계심을 바라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유대인,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게 고대했던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고국 땅으로 돌아왔으나, 많은 시간이 지나도록 성전을 완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가 여호와의 전, 성전을 건축할 시기가 아니라고 변명하고 있습니다.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 이유는 몇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지속적인 고난과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서 성전건축을 힘들어 했고 마음이 태만해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아직 70년이라고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였던 그 포로 기간이 남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한 B.C.586년부터 포로 기간을 계산한다면 선지자 학개가 예언할 당시는 66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바벨론이 유다 거민들을 처음으로 포로로 잡아간 B.C.605년부터 포로 기간을 계산한다면 선지자 학개 당시는 이미 70년이 지난 상태가 됩니다.
어쩌면 귀환한 유다 거민들은 포로 기간을 자신들의 상황과 여건에 맞추어 해석함으로 지금은 성전 건축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여기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 형편으로 합리화하며, 그 상황과 여건이 더 나아지면 하나님의 성전건축을 마무리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며 자기중심적인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상황논리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런 잘못을 쉽게 저지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때, 환경이 열리는지 아닌지, 형편이 나아지는지 아닌지를 보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환경과 형편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요단 강은 범람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들이 요단을 건너기에 적절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약궤를 메고 있는 제사장들에게 앞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그들이 요단 강에 발은 내딛는 순간, 엄청나게 범람하던 물이 멈춰섰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 강을 무사히 건넜습니다.
선지자 학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낙심하여 무너진 그들의 믿음을 다시 회복하도록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로는 성전건축을 방해하는 주변 정치적 세력들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기 이전 유다에는 사마리아인들이 대거 이미 살고 있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새로운 총독인 스룹바벨과 더불어 귀환한 백성들과 함께 성전건축을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함에 방해거리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살고 있던 기존 세력들은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질 것을 생각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 건축을 사사건건 방해하고 트집 잡았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에 진정서를 넣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국을 향하여 이들의 성전건축은 반역을 도모하려는 움직임이라고 고소를 하며 지속적으로 훼방을 놓았던 것입니다.
성전을 건축하다 중단되고 다시 시도하다가 중단되는 이런 일들이 반복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실망한 듯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과 신앙의 삶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경주에서는 큰 위험과 어려움도 있지만 오히려 큰 역경과 고난 앞에서는 하나님께 엎드리고 기도하며 믿음의 동역자들이 합심함으로 그런 난관을 잘 이겨내거나 뛰어넘게 됩니다.
그러나 아주 작고 사소한 문제 앞에서는 혼자의 힘으로 감당하려다가 도리어 넘어지고 낙심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런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사막이나 오지 탐험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휘몰아치는 폭풍과 추위, 모래 바람 등이 어려움이 되지만, 오히려 신발에 자주 들어오는 아주 작은 모래 알갱이가 너무 귀찮고 힘들게 한다고 합니다.
그 작은 모래 알갱이들이 발에 물집을 잡히게 하여, 여행자가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매우 힘들게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작은 모래 알갱이 하나로 계획했던 여행과 탐험을 포기하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우리의 신앙과 믿음에는 어떠합니까?
산더미처럼 큰 문제와 파도 앞에서는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엎드려 기도로 승리하지만, 아주 작고 사소한 문제와 갈등 앞에서 무너져 실망하고 낙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본문 3~5절의 말씀입니다.
3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4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5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이스라엘에 돌아와 살던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다고 변명한 것에 대한 하나님 여호와의 답변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성전을 완공하지 못한 것이 결코 경제적 궁핍이나 아직 때가 아직 되지 않은 것, 혹은 주변의 정치적 세력과 여건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전이 훼파되어 황무하였지만, 자신들의 집은 호화롭게 꾸미고 있었습니다.
‘판벽한 집’이라는 것은 호화스럽게 집을 치장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완공되지 않은 채 방치된 반면, 유다 백성들의 집은 자신들이 살아가기에 완전한 모습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호화롭게 치장되어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지요.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집은 치장하면서도 무너진 하나님의 성전은 돌아볼 여력도 생각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학개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직하게 자신들의 마음과 삶을 생각하고 돌아볼 것을 책망하고 계십니다.
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때가 아직 되지 않았다는 말은 얼마나 가증스러운 변명인가를 스스로 돌아보아 깨달으라고 권면하고 계십니다.
6절 말씀입니다.
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선지자 학개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가증스러운 변명으로 하나님을 속이려 했던 유다 백성들이 겪게 될 상황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이 자기의 열심히 부지런히 일하더라도 벌어들이는 소득은 적을 것이며, 그들이 먹고 마셔도 배부르거나 만족함을 누리지 못할 것이라 경고하십니다.
열심히 경제활동을 한 일꾼이 그 일한 대가를 받을지라도 마치 집에 도둑이 들어 재산을 다 도둑맞는 것처럼 재물을 모으려 하지만 다 빠져나가 버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며 즐거이 섬기려 하지 않는 신앙의 태도와 하나님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며 아까워하는 탐욕의 결과라고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신암의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학개를 통하여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어다”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신앙과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지 살피라 말씀하십니다.
이는 우리를 정죄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신앙과 삶의 방향을 점검하고 회복으로 나아가도록 하시려는 초청입니다.
하나님께서 중심이 아닌 성도의 삶과 신앙은 영적인 공허와 실제적인 삶의 궁핍함으로 나타납니다.
성도의 삶이 하나님의 임재를 중심으로 하는 삶을 살아낼 때 비로소 성도의 삶은 질서가 잡히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성도의 신앙과 삶에 진정한 회복의 역사를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완성한다는 것은 신앙와 믿음의 삶을 하나님 중심으로 바로 세운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을 살아가면서 여러분의 믿음과 신앙 또한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중심으로 세워지고 있는지 살피는 기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과 신앙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핌으로 무너진 부분이 다시 바로 세워지고 하나님을 여러분의 삶의 중심에 모심으로 온전한 회복의 은혜를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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