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나눔방
말씀: 창세기 25:1-18
제목: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사명을 감당해 가라
우리가 어제 시간에 함께 생각해 보았던 창세기 24장은 이삭 결혼장이었는데요.. 믿음의 꽃은 내 자식의 결혼을 어떻게 시키느냐로 끝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속에서 그 신앙이 유산으로 계승되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결혼과 가정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은 이삭이 아내를 얻음으로 언약의 계승자가 되었음을 밝힌 후에 본격적으로 이삭의 이야기를 진행하기 전에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지막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는데 아브라함은 그야말로 복 있는 사람, 믿음의 조상 이었습니다.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아브라함이 후처을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 참 이것도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인지.. 아브라함은 이삭을 결혼시킴과 동시에 이삭이 자신으로부터 독립해서 살 수 있도록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다시 후처를 얻었습니다. 여기서 더욱 놀라운 것은 2절에 보면 그두라와의 사이에서 6명의 아들들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통하여 자녀 한명 얻기가 어려웠지만 노년에는 후처를 통해 많은 자녀를 얻었습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을 합하면 아브라함은 모두 8명의 아들을 둔 것이지요. 그리고 3, 4절에 6명의 아들로부터 손자들도 태어났습니다. 언약의 후계자는 이삭이지만 아브라함의 후손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온 땅으로 퍼져나가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기죠. *아브라함이 100세 때 이삭을 얻을 때에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아브라함이 86세 때 사라의 여종 하갈로부터 이스마엘을 얻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스마엘이 13살 되고 아브라함이 99세 될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 말고 사라로부터 아들을 얻을 것이다고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100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90세니 어찌 출산하리오.. 하고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둘 다 생산의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하나님 100세 된 내가 무슨 아이를 낳는단 말입니까? 속으로 비웃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13살 된 이스마엘이나 잘 키우게 해 주십시오. 저는 더 이상 바라는 게 없습니다. 라고 한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로 하여금 이삭을 낳게 하지 않았습니까? 그 이후에 아브라함이 140세가 넘어 이삭을 결혼시키고 나서도 자녀를 낳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회복은 1회적인 회복, 일시적인 회복이 아니라.. 영원한 회복이기에 우리는 그분의 지속적인 은혜와 능력 속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죽을 때까지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회복이 지속적인 회복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회복의 지속적이고 영원한 능력을 믿을 때..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온전히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5절“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 우리말은‘모든 소유를 주었다.’이렇게 기록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원문에는 아브라함이‘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주었다’입니다.... 같은 이야기인 것 같지만 같은 이야기가 아니에요. 우리 말 성경처럼 자신의‘모든 소유를 주었다’고 하면.. 물질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물질적 재산만 줬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자기가 소유한‘모든 것을 주었다’고 하면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영적인 것, 정신적인 것..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재산만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언약까지 준 것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육적인 가정만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이루어진 영적인 가정을 유산으로 준 것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신앙의 이삭으로 성경 속에 살아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무엇을 유산으로 주시기 위해서 애쓰십니까? **오늘이라도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면 아브라함처럼 자식에게 줄 언약의 말씀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유언 한마디도 하지 않고 세상을 떠난다 할지라도. 그 자녀들이 여러분으로부터 내가 받았다고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간증할.. 영적 재산이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생각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6절“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 여러분 우리는 아브라함 앞에서 또다시 머리를 숙이게 되는데요... 아브라함은 이삭을 결혼시킨 뒤에 후처를 통해 6명의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대로 가만히 두고 아브라함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삭이 그 가계를 이어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6명한테 어떻게 당하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자신이 떠나고 난 뒤에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받은 이삭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그두라에게서 낳은 자식들에게도 재산을 주고 멀리 동쪽으로 가서 살도록 했습니다. 자기가 살아있을 때에 정리를 한거죠. 아브라함은 매사가 철저했습니다. 아브라함도 실수할 때가 많이 있었지만.. 노년의 아브라함, 특히 자식을 결혼시킬 때의 아브라함의 믿음은 선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그리고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 어떤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깨끗하게 매듭짓고 정리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조상입니다.
죽음은 내가 오늘 하는 일을 내일 다른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주방에서 밥을 짓든 사무실에서 사무를 보든.. 내일도 내가 당연히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내일도 내가 한다는 보장이 없는 것입니다.. 뉴스나 또 주위에 보면 부모가 평생 애쓰고 모아놓은 재산 때문에 자녀들 원수 되게 만드는 부모가 얼마나 많습니까? 아브라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우리가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찬송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그 자체가 믿음이 아닙니다. 이것은 시작인 것이죠?! 믿음은 삶으로 지속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내가 정리하고 매듭짓고 행하여야 될 것을 정확하게 하는 사람, 그 사람이 믿음의 사람인 것입니다.
7절“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세라” 이제 175세로 아브라함이 세상을 떠나는데 우리말로 향년이 백칠십오세라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지만 히브리말은 아브라함이 산.. 햇수의 날 수가 175년이다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다시말씀드리면 아브라함이 총 살았던 해수의 날들의 수가 175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냐 하면 인간의 한 평생은 한 해 한 해가 쌓여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가 쌓여서 일생이 된다는 유대인들의 인생관을 표현한 것입니다. 여러분‘저분이 향년이 175세입니다.’하는 것과‘저분이 총 살았던 날 수의 합계가 175년입니다’하는 것 하고는 전혀 다른 얘기가 됩니다. 우리는 항상 횟수만 생각합니다. 175년.. 별것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 날들이 쌓여서 인생이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되면.. 매일 아침이 새로워질 수밖에 없고.. 매일 저녁을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예배드리고 있는 이 시간도 인생이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쌓여서 오늘이고 이것이 쌓여서 우리 평생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을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오늘 하루를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한다면 내일도 잘 살 수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오늘의 결과가 내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를 그리스도인답게 잘 산다는 보장 또한 더욱 없는 것입니다. 지금 흘러가는 이 1초.. 우리가 맞는 이 하루의 소중함을 깨달을 때에 우리의 일생이 하늘의 별처럼 빛날 수 있는 것입니다.
8절“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를 히브리말로‘사베야’라고 기록 되어 있는데 그 말을 그대로 번역하면 아브라함이 충족한 상태에서 만족한 상태에서 죽었다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단순히 오래 살기만 하고 많은 시간을 허송세월을 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 땅에서 만족한 인생을 살았고 믿음 속에서 만족함을 누린 상태에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후회 없이 죽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부르실 때 우리의 삶에 대해서 후회가 없어야 합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이 후회 없이 살다 갈 수 있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 자기 삶을 맡겼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7장 1절 말씀에 보면, 아브라함이 99세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히브리말로‘엘 샤다이’라고 말씀드렸는데..,‘샤다이’라는 말은‘충분하다, 충족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는‘모든 것이 충분합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요? 왜 그랬을까요? 75세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뒤 실패자와 같았던 자신의 인생을 맡겨드림으로, 100년 동안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후회 없이 인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다시 8절을 보면“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기운이 다하여 죽었다’이 말도 히브리 원문은 아브라함이‘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죽었다.’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즉... 기운이 다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 호흡이 멈추면서‘그리고 죽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죽음은 절대로 거창하고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내 쉰 숨을 다시 못 들이키면 끝나는 것입니다. 생과 사가 지금 여기에 있기 때문에 매 호흡마다, 매 순간마다 믹음 속에서 살아야 될 이유가 여기에 있는것입니아 이사야서 2장 22절 말씀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인간은 무력한 존재이고 그 호흡을 주신 하나님이 언제든지 호흡을 거두어 갈 수도 있다.. 그러니 나를 의지하라는 말씀인 것이죠?!
다시 8절 보겠습니다.“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여러분 우리의 죽음은... 끝이 아니고 시작입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 앞에 서야 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설 것인가... 그것이 우리의 삶 속에서 믿음으로 각인된다면, 우리는 세상적이고 탐욕적이고 미워하는 헛된 삶을... 살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9절“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굴에 장사하였으니” 드디어 이스마엘도 등장합니다. 한 아버지 아브라함의 장사를 함께 치렀습니다. 우리는 평생 살아가면서 수많은 장례식에 참여하게 됩니다. 어떤 장례식은 정말 내가 가고 싶어서 가고, 어떤 장례식은 형식적으로 가고, 어떤 장례식은 가기 싫지만 체면 때문에 가고, 어떤 장례식에서는 장례식이 거행되는데 머릿속으로 계속 딴 생각하다가 옵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장례식은 다릅니다. 부모의 장례식을 통해서는 어떤 장례식에서도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고 결심하게 됩니다. 대개 둘 중의 하나인데... 내 아버지처럼 살아야지, 어머니처럼 살아야지, 내 아버지처럼 안 살아야지, 어머니처럼 안 살아야지..
*여러분은 나중에 여러분들 자녀들이 장례식을 치를 때 어떤 생각으로 치를 것 같습니까? 저도 마찬가지구요.... 그러면 오늘 하루하루를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의 해답은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멀리 있지 않습니다.
10절“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 이삭과 이스마엘이 아버지를 막벨라 굴에 장사했는데, 막벨라 굴은 아브라함이 햇 족속이 그냥 가지라고 하는 것을 돈을 주고 산 곳입니다. 아브라함이 산 매장지, 사라를 묻었던 그 매장지, 거기에 아브라함도 묻혔다는 것입니다.
*왜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왜 샀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후손들이 이집트에서 400년 동안 사는 동안에, 그들의 인생의 목표가 이집트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가나안 땅이 되기 위해서는 발판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죽음을 단순한 죽음으로 끝내지 않고.. 영원한 가나안을 향한 방향을 세워 주고 떠난 것입니다. 그 믿음이 이삭에게 계승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죽음은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마지막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11절“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라헤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그러면 이삭은 복만 받고 가만히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이삭은 브엘라헤로이 근처에 거주하였습니다. 아버지가 헤브론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았듯, 이삭도 자기를 살피시고 살아계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하나님께 응답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죽음마저도 무엇을 목적으로 살아야 될 것인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 믿음이 이삭에게 계승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또한 하나님께서 언제 부르시는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물을 매일매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4천년 전에 이 세상을 떠남으로...
175년 동안 살았을 때보다.....
지금까지 내려오며... 4천년 동안 더 크게 역사하듯이,
우리의 삶도 떠난 뒤에 자녀들의 삶 속에서 역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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