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나눔방
말씀: 고린도전서 11: 2-10
설교: 교회의 질서와 권위에 순복하라
여러분, 오늘 새벽 교회 오실 때 옷장 앞에서“오늘 뭐 입지?” 혹 고민하시지 않으셨습까?
저도 설교하러 올라오기 전에“무슨 넥타이를 맬까?”고민했는데요.. 왜일까요?
옷은 단순히 몸을 가리는 천 조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만날 사람에 대한‘예의’이기도 하고, 내가 지금 어떤 자리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바울이 갑자기‘머리에 뭘 써라, 마라’하는 복장 문제를 꺼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눈으로 보면“아니, 요즘 세상에 머리에 뭘 쓰는 게 무슨 상관입니까?”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이 문제를 꺼낸 진짜 이유는 단순히 복장에 대한 규정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와‘공동체를 향한 사랑’이라는 본질을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우리 신앙의 옷차림을 다듬어 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사도 바울은 본격적인 책망과 권면을 시작하기 전에,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해 '칭찬'을 하는데요...
그들이 바울을 늘 기억하고, 바울이 그들에게 직접 전해준 신앙의 '전통들'을 붙잡고 잘 지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기억하다' 라는 단어는 단순히“아, 옛날에 바울이라는 목사님이 계셨지”하고 추억하는 게 아닙니다.
원어적인 의미로 보면 '잊지 않으려고 치열하게 마음을 쓰고 염두에 두다' 라는 뜻입니다.
즉,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바울이 눈앞에 없을 때도“바울 목사님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결정을 내리셨을까?
목사님이 전해준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이었지?”하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하며 삶에 적용하려고 애썼다는 뜻입니다.
이 구절 2절을 묵상하면서.. 우리를 한번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목회자나.. 성도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을 때는 경건한 척, 믿음이 좋은 척..,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정이나, 세상 사람들과 섞여 있는 직장 속에서는 어떻습니까?
**성경 말씀을, 들은 설교를, 지키기 위해, 고린도 성도들처럼 '치열하게 마음을 쓰며' 살아가십니까?
아니면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 다 잊어 버리십니까?
사랑하는 여러분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처럼 목회자가 없어도, 다른 성도들이 보는 눈이 없어도,
말씀을 기억해내려는 그 간절함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3절입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바울은 교회가 반드시 알아야 할 영적 질서의 계보를 말합니다. ‘하나님 → 그리스도 → 남자 → 여자’ 의 질서입니다.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여기서 ‘머리’ 는 군림하는 우두머리가 아니라 ‘근원’ 과 ‘질서’ 를 뜻합니다.
그리스도의 머리가 하나님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지만,
이 땅에 구원 역사를 이루기 위해 성부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신 그 ‘비움과 순종의 질서’ 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정과 교회도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 로 싸우는 곳이 아닙니다.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고 서로를 비워내어 하나님의 형상을 완성해가는 연합의 현장입니다.
따라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 그리스도와 인간의 관계에서 ‘머리’ 라는 표현은 계급의 위계가 아니라,
역할을 인정하고 서로를 비워내며 섬기는 ‘신비로운 연합의 질서’ 인 것입니다.
세상은 자꾸만 ‘누가 위에 서느냐,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 를 가지고 싸웁니다.
부부 싸움도 결국 주도권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 집안의 머리가 되겠다고 싸우니까 가정이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시지만, 기꺼이 자기를 비워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가정과 교회에서 내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예수님처럼 먼저 낮아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4절.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남자가 예배중에 머리에 무언가를 쓰고 행하는 것은 자신의 머리인 '그리스도' 를 욕되게 하는 행동이라고 바울이 경고합니다. 당시 고린도 사회는 로마 문화의 영향권 아래 있었습니다. 로마의 귀족 남성들이나 사제들은 종교적인 의식을 행할 때나 자신의 높은 사회적 신분을 과시하고 싶을 때,
고급스러운 겉옷 자락을 끌어올려 머리에 뒤집어쓰곤 했습니다. “나 이런 사람이야! 나 로마의 엘리트 귀족이야!” 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릴 때조차 “내가 세상에서 얼마나 잘나가는지, 내 신분이 얼마나 높은지” 를 보여주기 위해 옷차림을 하고 머리를 가리는 것은, 오직 예배의 주인공이 되셔야 할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는, 그저.. 가난한 죄인으로 서야... 합니다.
세상의 자랑을 다 벗어버릴 때, 비로소 그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덮이는 것입니다.
교회와 세상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명함과 지위를 다 벗어버리고,
오직 십자가 앞에 죄인 된 모습으로만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5절, 6절입니다.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반대로 여성이 머리에 쓴 것을 벗어버리고 기도나 예언을 하면, 그것은 자신의 머리인 남편을 욕되게 하는 것이며...
당시 가장 수치스러운 형벌이었던 '머리를 완전히 밀어버린 것' 과 똑같은 수치라고 말합니다.
당시 고린도 지역에서 공공장소나 예배 중에 머리에 너울을 쓰지 않는 여자는 딱 두 부류였습니다.
첫째는 간통을 저질러 사회적으로 낙인찍혀 머리가 잘린 여인들이었고,
둘째는 신전에서 몸을 팔던 창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몇몇 열성적인 여성 성도들이 복음의 자유를 얻었다고 이 너울을 벗어 던진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문화에서“나는 방종한 여자다”라고 광고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다르게 말씀드리면, 이것은 불신자들에게 오해를 사고 전도의 문을 막는 행위였습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지요? “내 자유인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
“내 돈 쓰고, 내가 내 맘대로 옷 입고, 내가 내 방식대로 신앙생활 하겠다는데 왜 간섭합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그런데 이 무서운 개인주의가 공동체의 덕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면....
그 자유는‘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복음 안에서 누리는 나의 권리와 자유보다,
연약한 지체들의 마음과 교회의 덕을 언제나 최우선 순위에 두는 성숙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7절.“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는 하나님의 영광이고,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빛에서 시작해서 동물, 그리고 남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자의 몸에서 가장 소중한 갈빗대를 취해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창조의 발전 단계를 보면 뒤로 갈수록 업그레이드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남자는 흙으로 만들어졌지만, 여자는 인간의 몸에서 나온 존재입니다.
그래서 여자가 남자의 영광이라는 것은 남자보다 열등하다는 뜻이 아니라, 상대방을 돋보이게 하고 빛나게 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여자가 남자의 영광이라는 것은, 내가 돕는 배필로서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인생을 더 빛나고 온전하게 만들어 준다는 의미입니다.
남자는 여자를 볼 때“우와, 나의 영광이구나!”하고 존중해야 하고,
여자는 자신의 영광스러움을 깨닫고 그 존재의 품격을 지키고 서로가 서로의 자부심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아내가 잘되는 것이 남편의 영광이고, 여러분들이 잘 되시는 것이 담임목사님의 영광이며 우리 교역자들의 영광인 것입니다.
8-9절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사도 바울은 다시 한번 창조의 순서와 목적을 이야기하며 여자가 남자에게서 나왔고,
창조의 목적 또한,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돕는 배필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 여러분 성경에서‘돕는 배필’이라고 할 때, 이‘돕는 자(에제르)’라는 단어는 주로 언제 쓰이는지 아십니까?
인간이 하나님을 부를 때“하나님!! 하나님은 나의 돕는 자이십니다”라고 할 때 쓰입니다.
따라서 여자가 남자를 위해 지음 받았다는 것은.....,
남자라는 미완성의 존재.., 즉, 혼자서는 도저히 온전해질 수 없는 연약한 존재를
‘완성시키고 구원해 주기 위해’하나님이 보내신 강력하고 신비로운 보완적 존재라는 뜻입니다. 아멘! 이십니까?^^
오늘 집에 돌아가시면 남편되시는 성도님들님께서는 아내의 손을 꼭~~잡고, “당신이 내 곁에 있어서 내 부족함이 채워집니다.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해” 라고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하시기 바랍니다.
10절입니다“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바울은 결론적으로 여성이 천사들을 의식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권세 아래에 있다는 순복의 표시를 그 머리 위에 두는 것이 마땅다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권세 아래 있는 표’ 라는 것은 겉으로 보면 ‘나는 남편의 지배’ 를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 고린도 사회에서 정숙한 여인이 머리에 너울을 쓰고 공공장소에.. 나간다는 것은,
세상의 음란한 유혹과 무례한 남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일종의 '보호막' 이자 '권리' 였습니다.
그래서 너울을 쓴 여인은 아무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누구 아래에 있는 것’ ‘순종하는 것’ ‘나를 제한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내 마음대로 하고 내 뜻대로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하지만 성경의 원리는 정반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 아래 들어갈 때,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 질서(교회의 권위, 가정의 질서)에 기쁘게 순종할 때,
그 안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완벽한‘보호와 자유와 권세’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진짜 신앙인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존중합니다.
내 마음에 안 들어도 교회가 세운 질서에 순복합니다. 왜요? 그것이 나를 보호하는 길이고.., 그것이 복음의 영광을 드러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권세가 있으셨지만, 저와 여러분을 살리시려고 그 권세를 포기하고 십자가에서 벌거벗겨지는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교회의 본질이고, 우리 신앙의 본질입니다.
내 만족과 내 자유를 위해 교회의 질서를 깨뜨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고
하나님이 세우신 아름다운 창조의 질서 안에서 서로를 영광스럽게 여기고 내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높여드릴 때,
주님의 완벽한 보호와 평안이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의 예배 가운데 가득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런 복된 삶을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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