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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고린도전서 11장11-16절
설교: 창조질서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를 바라보면, 남녀 관계를 비롯한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끊임없는 갈등과 대립, 그리고 논쟁이 불타오르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누군가는“왜 남녀가 달라야 하느냐, 모두가 똑같아야 한다”라며 본질적인 차이마저 부정하려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남자의 역할은 이것이고 여자의 역할은 저것이다”라며 고정관념과 유교적인 질서만을 내세워 자기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
심지어 인류 역사를 보면 수많은 문화 속에서 여성의 존재 가치를..
남성보다 낮게 평가하거나, 여성을 남성의 부속물처럼 여기는 왜곡된 모습들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시간 우리가 말씀을 통해 나누었듯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설계하시고 우리를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을 때의 본래 뜻은
결코‘지배와 복종’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셨던 것은 서로가 서로를 채워주고 완성해 가는‘연합과 조화’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며 권면하는 내용 역시, 단순히“예배드릴 때 머리에 수건을 써라, 말아라..”하는
외적인 복장 예절이나 형식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 외적인 관습 너머에 흐르고 있는‘하나님이 친히 설계하신 상호 존중의 질서’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온전하게 회복하라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 삶의 자리에서 깨어지고 금이 간 관계들이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지,
그리고 창조질서 안에서 서로를 존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1절 입니다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바울은 남자와 여자가 결코 독립적이거나 단절된 존재가 아니며,
오직‘주 안에서’서로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깊은 연관성을 지닌 관계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12절에 그 움직일 수 없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증명합니다.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바울은 태초에 하와가 아담의 몸(갈빗대)에서부터 창조되었던 창조의 순서를 기억하게 함과 동시에,
그 이후 역사의 모든 남자는 결국 여인의 몸, 곧 어머니를 통해서만 이 땅에 태어난다는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신비로운 사실을 강조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 주는걸까요?
남자와 여자는 어느 한쪽이 우월하여 지배하거나, 반대로 어느 한쪽이 열등하여 종속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 존재 자체가 서로를 통해서만 온전해질 수 있고,
서로가 결합될 때에만 비로소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을 이룰 수 있는 '상호 보완적이고 의존적인 존재'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이토록 남녀의 평등과 본질적 동등함을 강력하게 이야기하는 목적은 분명합니다.
자신이 공적 예배 때 여성에게 수건을 쓰라고 권면하는 이유가,
결코 남녀 간의 본질적인 높낮이나 불평등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성도들에게 사전에 명확히 밝히고 싶었기 때문인데요...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중요하고, 내 지식과 내 경험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할 때 영적인 교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내 곁의 모든 존재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깊이 깨닫게 되면, 내 이웃을 향한 시선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나를 증명하기 위해 밟고 일어서야 할 경쟁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 삶에 엮어주신 '축복의 동반자' 로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말씀에서도 언급했듯이, 7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요,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영광' 이라는 단어는 무엇입니까? 쉽게 말해 '상대방을 가장 아름답게 빛나게 해주는 존재' 라는 의미입니다.
여자가 남자의 영광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돕는 배필로서 그 남자의 삶을 비로소 온전하고 빛나게 세워준다는 뜻입니다.
오늘 하루 삶의 자리로 나아가실 때, 여러분 곁에 있는 배우자, 성도들, 그리고 직장의 동료들을 내 유익을 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연약함을 돕고 나를 온전케 하기 위해 보내신 가장 귀한 동반자로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있어서 내 삶이 더 빛이 납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최고의 축복입니다.”
이 믿음의 고백과 존중의 행동이, 사랑하는 여러분의 깨어진 가정과 무너진 관계를 치유하는 첫걸음이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복음 안에서의 참된 자유는 내 마음대로 행하는 방종이 아니라, 공동체의 덕을 위해 나를 절제하는 거룩한 배려입니다.
13절 14절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바울은 예배의 질서를 권면하면서‘본성’이라는 단어를 꺼냅니다.
여기서 말하는 '본성'이란, 하나님이 천지에 심어두신 창조의 원리와 더불어 당시 사회가 공유하고 있던 보편적인 문화적 통념을 포함합니다.
무슨말이냐면, 오늘날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는 여성이 짧은 머리를 하거나 남성이 머리를 길게 기르는 것이 개인의 개성으로 존중받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배경이 되는 고대 로마와 고린도 사회에서 남자가 머리를 길게 기르는 것은 자연의 이치와 사회적 본성에 어긋나는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졌습니다.
반대로 여성이 머리를 밀거나 짧게 자르는 것은 당시 행실이 바르지 못한 창녀들이나 범죄자들을 나타내는 표시였기 때문에,
공적 예배 자리에서 여성이 머리에 쓰는 수건을 벗어 던지는 것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오해와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이었습니다.
일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참된 자유를 얻었는데, 이런 세상의 관습과 형식이 무슨 상관이냐!” 라며
단지 자신이 가진 자유와 특권만을 거칠게 주장했습니다.
그들은‘형식으로부터의 자유’를 외치며 공동체의 영적 질서와 문화를 완전히 무시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단호하게 권면합니다.
복음은 우리를 모든 차별과 억압에서 완벽하게 해방하지만,
그것이 무조건 내 고집과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영적 방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된 복음의 자유는, 연약한 남을 배려하기 위해서,
그리고 주님의 몸 된 교회의 화평을 위해서 내가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와 자유를 기꺼이 제어하고 양보할 줄 아는 '성숙함' 이라는 것입니다
1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
여기서‘영광’이란‘자랑’혹은‘아름다움의 보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성에게 긴 머리를 주셔서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지키게 하셨고,
이것을 통해 공적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를 갖추는 것이 합당함을 알게 하셨습니다.
다시말씀리면, 남자의 짧은 머리와 여자의 긴 머리는 단순히 외모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다르게 지으신 창조 원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의 도구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큰 위협 중 하나는
하나님이 세우신 이 기본적인 남녀의 아름다운 창조적 구분을 아예 지워버리려고 하는 극단적인 시도들입니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분류조차 거부하고, 창조의 질서를 깨뜨리려는 움직임이 온 세상에 가득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사람을‘남자’와‘여자’로 구별하여 창조하셨고,
그 다름속에 하나님의 오묘한 계획이 숨겨져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다름은 서로를 시기하거나 정죄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서로가 가지지 못한 부분을 채워주고 보완하면서, 한 성령 안에서 아름다운 연합을 이루라는 하나님의 최고의 배려이며 축복인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나의 스타일, 나의 의견, 나의 고집을 너무 거칠게 내세우다 보면
정작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드려야 할 '하나님께 집중하는 예배' 가 깨어지게 됩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다” 라는
고린도전서 10장(23)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나의 옳음이 증명되는 것보다, 양보를 통해 공동체에 주님의 거룩함과 화평이 드러나는 것을 훨씬 더 기뻐하십니다.
오늘 하루, 나의 말투와 행동이 누군가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아보는 거룩한 배려의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6절 말씀입니다.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이제 바울은 변론과 논쟁을 일삼는 자들을 향해 쐐기를 박습니다.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교회에는 이기기 위한 논쟁의 관례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바울의 이 강력한 선포의 말을 우리는 가슴 깊이 새겨야 합니다.
교회는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세상 법정처럼 칼로 무 자르듯 가려내어, 기어코 내 논리로 상대방을 굴복시키고 이기기 위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허물 많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받았음을 고백하며,
그 과분한 사랑으로 내가 내 곁의 형제를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지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모인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내 생각은 항상 옳고, 저 사람의 생각은 무조건 틀렸다” 고 주장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
여러분...,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 공동체는 여지없이 금이 가고 깨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내가 틀릴 수 있다, 나와 저 사람의 생각이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겸손히 인정하고,
내 귀와 마음을 열어 다른 이의 아픔과 의견을 경청할 때, 바로 그 순종의 자리에 하나님의 치유가 시작되고 하늘의 평화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한발 물러설 줄 아는 겸손, 그것이 바로 예수를 깊이 닮은 그리스도인의 참된 품격입니다.
오늘 하루 삶의 현장에서 나와 뜻이 맞지 않고 성향이 달라 마음이 상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을 것입니다.
왜 없겠어요 속이 시커머케 타들어갈 일들이...그죠?!
그때 내 날카로운 감정과 논리로 상대를 꺾으려 하지 말고..,
대신 우리를 위해 묵묵히 조롱과 멸시를 참으시고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한 발 뒤로 양보하고, 상대방의 거친 마음을 넓은 사랑으로 품어주는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하늘의 면류관을 얻을 진짜‘사랑의 승리자’입니다.
바울이 말한 '교회의 관례' 는, 온 교회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서 함께 머리를 숙이고,
아름다운 사랑의 질서와 순종에 기쁨으로 동참하라는 거룩한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우리를 모든 죄와 율법의 정죄로부터 완벽하게 해방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자유함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로봇처럼 똑같이 만들지 않으시고,
각각 다른 모양과 기능, 다른 은사와 성품을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가정 안에서, 그리고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우리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깊이 존중할 때,
우리가 속한 그곳은 비로소 사탄 마귀가 틈타지 못하는 가장 안전하고 따뜻한 영적 보호막이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실 때, 내 가슴속에 살아 숨 쉬는 이 아름다운 창조의 원리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 중심적인 교만과 이기심, 내 고집을 십자가 앞에 철저히 내려놓고, 내 곁에 있는 이들을 하나님이 나를 위해 보내주신 최고의 선물로 고백하며,
서로 뜨겁게 존중하고 배려함으로써 하나님의 공동체에 덕을 세우고
오직 주님의 영광만을 높이 나타내는 복된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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